[딜제] 최강의 클리셰 SF 데우스 엑스 마키나

 

 

202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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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KPC와 탐사자는 새하얗게 얼은 바닥을 딛고 섭니다.
 
시작부터 과격하지만, 맞은 편에는 58마리의 크리쳐가 버티고 있습니다.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안부를 묻고 넘어갈까요.
 
안전지대 탈환 작전으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 잘 지냈나요?
 
만약 복귀했다면 이번엔 또 다른 임무에 참여 중일 거고, 도주했다면 정처 없이 헤매던 사이에 벌어진 일일 겁니다.
 
kp:야다시해 레드선
 
딜런 H. 바넷:(방금 뭐가 지나갔더라...)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딜런은 새하얗게 얼은 바닥을 딛고 섭니다.
 
시작부터 과격하지만, 맞은 편에는 29마리의 크리쳐가 버티고 있습니다.
 
안전지대 탈환 작전으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 잘 지냈나요?
 
만약 복귀했다면 이번엔 또 다른 임무에 참여 중일 거고, 도주했다면 정처 없이 헤매던 사이에 벌어진 일일 겁니다.
 
하지만 이유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전투가 시작되거든요.
 
딜런 H. 바넷: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70/35/14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4
 
어려울 것 없습니다!
 
딜런이 내내 해오던 일인 걸요.
 
최강의 인류에게는 숨을 쉬는 것보다 쉬운 난도입니다.
 
우지끈, 와장창, 뚝.
 
그리고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금속들이 나무를 긁고 땅을 파헤치며 산산이 조각나 천지에 뿌려진 별이 됩니다.
 
고통도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우는 대신 윤활유 따위를 흘리며 바닥을 더럽힐 뿐입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별다른 바 없는 일상입니다.
 
그러나……
 
어라?
 
생존 크리쳐가 과반수 미만으로 떨어져도 그것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끼익, 끼익, 끼이이익.
 
낡은 경첩이 흔들리는, 불길한 소리만 잿빛 하늘을 긁어댑니다.
 
딜런이 이상함을 감지하는 순간,
 
부서졌던 기계가 다시금 재생합니다.
 
딜런이 분명히 핵을 파괴했음에도 불구, 본체를 되찾은 것들은 아까와 똑같이 날카롭고 흉흉한 금속 테두리를 빛내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딜런,
 
딜런 H. 바넷: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kp:이성 감소 없음
 
이토록 확실한 대전제가 무너지다니!
 
그 사이 크리쳐들이 진화한 건가요?
 
아니면 딜런의 솜씨가 엉망진창으로 퇴화한 건가요?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매끄러운 원기둥과 원뿔, 구로 이루어진 금속형 크리쳐는 날카로운 가시를 표면에 두르고 있습니다.
 
수은처럼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화하면서요.
 
불규칙하고 정형화된 모양새 사이, 핵은 분명히 새파랗게 빛나고 있습니다.
 
딜런, 핵을 다시 부숴볼까요?
 
딜런 H. 바넷:(부숴야지 뭘 보고 있어)
 
딜런 H. 바넷:
대 크리쳐 살상탄
기준치: 70/35/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19
 
탄환은 확실히 크리쳐의 핵에 직격합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크리쳐가 나가떨어집니다.
 
부서진 파편 사이로……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어라.
 
저건 핵이 아닌 것 같은데요?
 
색과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시계처럼 보이는 것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일전의 핵은 하나의 구로 이루어져 있어 바로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정교한 부품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파괴하더라도 한 번에 박살 내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딜런 H. 바넷: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저것의 모든 부품을 흩어두면 핵으로서 기능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재생까지는 기껏해야 3분 남짓이 소요됩니다.
 
개체에 따라 월등히 빠른 예도 있으니 여유롭지는 않군요.
 
딜런이 뛰어 핵을 가로채면, 뛰어온 경로를 따라 발자국이 남고 흰 눈은 진흙이 섞여 온통 더러운 색으로 물듭니다.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최강의 인류! 딜런이 핵을 박살 내는 순간!
 
긴 이명이 들리고,
 
째깍,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째깍,
 
째깍,
 
째깍....
 
눈앞이 핑 돌며……
 
딸깍.
 
kp:불 끈 거 누구야?!
 
딜런 H. 바넷:누구일까요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딜런은 눈밭에서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심장은 여전히 정신없이 쿵쾅쿵쾅 날뛰고.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본다면,
 
전부 멀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꽤 익숙한 광경이지만 어딘가 다릅니다.
 
일어나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딜런 H. 바넷:(일어나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다.)
 
여태 입고 있던 군복은 어쩌고 이런 차림인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코트와 목폴라.
 
어쩐지 낯익은 복장이기도 한데…….
 
날이 춥네요.
 
딜런 H. 바넷:뭐지....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을 확인한다면 온통 눈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커녕 시야를 들고,
 
들어도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전부입니다.
 
아까 그곳에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진 거죠?
 
바람의 냄새가 전혀 다릅니다.
 
더 건조하고 차갑습니다.
 
딜런 H. 바넷:여기가 어디야? (짜증내면서 일단 아무 방향으로 걸어감...)
(걸어가려다 자신이 뱉은 무언가 발견하고 확인함...)
 
어떤 덩어리를 확인한다면 딜런이 토해낸 것은 다름 아닌…… 시계입니다.
 
금속 재질로 은색을 띠고 있으며 내부에 든 것은 새파랗게 빛나는 점액질과 복잡다단한 태엽들입니다.
 
크리쳐의 핵과 똑같이 생겼군요.
 
작동하지 않습니다.
 
딜런 H. 바넷:
건강
기준치: 65/32/13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강렬한 허기가 찾아옵니다.
 
배가 고파서 한 걸음도 딛지 못할 정도입니다.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왜 이렇게 속이 허하지?
 
당장 뭐라고 입에 넣지 않으면 못 참겠어요.
 
…….
 
설마 또 폭주했던 건 아니겠죠?
 
kp:체력 3 차감
 
왜 추위를 느끼는 걸까요?
 
고통은 왜 이렇게 날카로운 걸까요?
 
AOC의 요원이 된 후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치며 이런 감각에는 무척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심지어 최강의 크리쳐가 되어버린 후로는 더더욱이요.
 
이상함을 느껴도 딱히 짐작 가는 구석은 없습니다.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넓디 넓은 설원 속, 저 아래에 홀로 얼어붙은 호수가 보입니다.
 
저곳에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요?
 
딜런 H. 바넷:(호수가로 간다...)
 
얼어붙은 호수까지 내려가는 동안 세상은 고요하고 희디흽니다.
 
매서운 바람 소리만 귓가를 때립니다.
 
모자라도 있으면 좋을텐데요.
 
눈밭을 살펴도 발자국이랄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크리쳐 특유의 작동음이나 인기척도 들리지 않고요.
 
눈은 높이도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집니다.
 
그것들을 해치고 걷자니 유난히 사지가 무겁고 축축 늘어집니다.
 
바지와 구두도 축축하게 젖어버려서 불편하고요.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가면……
 
얼어붙은 호수의 테두리에 닿습니다.
 
표면은 단단하게 얼어 물을 마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그래도 호수 건너편 저 멀리에 검은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딜런,
 
가로질러 갈까요?
 
에둘러 돌아가는 것이 나을까요?
 
호수의 표면은 얼음 특유의 결이 생생합니다.
 
꽤 깊게 언 모양입니다.
 
그리고 딜런은 얼음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봅니다.
 
상당히 앳된 얼굴이네요.
 
지금의 딜런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딜런 H. 바넷: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이거, 완전히 언 거 맞아? (얼음 발로 꽝꽝)
 
콜록!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낯익은 기침 소리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내려오던 반대 방향으로 둥글게 솟은 눈무덤이 있습니다.
 
딱 사람 하나를 묻을 크기입니다.
 
딜런 H. 바넷:...? (한참 지켜본다.)
 
콜록! 콜록!
 
계속해서 낯선 기침소리가 들려옵니다.
 
설마 이곳에 사람이 있는 걸까요?
 
딜런 H. 바넷:(눈무덤 쪽으로 가까이 가 본다....)
(발로 슥슥... 눈 치워 본다........)
 
눈무덤을 발로 헤집으면 밟히는 것은 뺨이 차갑게 얼어버린 제티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제티지만 제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앳된 얼굴.
 
그리고…… 익숙한 군복.
 
AOC의 군복을 입고 있는 제티는 대 크리쳐용 살상 무기를 쥔 채 눈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다행히 미약하나마 숨이 붙어 있군요.
 
딜런 H. 바넷:...할로웨이? 야. 일어나. (제티의 어깨를 잡고 흔들흔들...)
 
오랫동안 이 눈 속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던 걸까요?
 
제티는 아무리 흔들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체처럼 차갑습니다.
 
딜런 H. 바넷:일어나라니까. 얼어 죽을 작정이야?! (찰싹)
 
우선 몸을 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대 크리쳐용 살상 무기를 확인한다면 현직 군인인 딜런은 그것을 보는 순간 직감합니다.
 
이건 현재 보급되는 무기가 아닙니다.
 
몸체에 쓰인 모델 넘버는 A-O19-C1015.
 
……약 4년 전에 사용하던 구형입니다.
 
앳된 얼굴의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조금 전과는 다르고,
 
무기의 연식은 분명히 4년 전의 것입니다.
 
kp:……4년 전으로 타임리프한 딜런,
 
딜런 H. 바넷: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kp:이성감소 없음
 
얼음송곳 같은 눈발이 흩날리고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몸은 딜런이 구하지 않는다면 얼어붙은 설원에 버려진 채 시체가 되겠지요.
 
최강의 인류라는 명성이 애석하게도 무덤 하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최강의 크리쳐니 뭐니 하는 끔찍한 실험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딜런 H. 바넷:....... (일단 제티를 들쳐메고 동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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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스칠 때마다 피부가 갈라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최강의 인류도,
 
최강의 크리쳐도 되지 못한 신체는 연약하기 짝이 없군요.
 
들춰 맨 제티의 무게가 자꾸만 무릎을 꺾습니다.
 
딜런 H. 바넷:
건강
기준치: 65/32/13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kp:체력 1 감소
 
기억을 따라 걸어도 동굴은 나오지 않습니다.
 
딜런 H. 바넷:아... 더럽게 무겁네.......
 
분명 얼마 걷지 않았던 것 같은데.
 
추억의 미화일까요?
 
정신을 잃은 제티는 갈수록 무겁고 걸리적거리기만 합니다.
 
아,
 
그냥 버리고 가고 싶다…….
 
딜런의 힘듦이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동굴의 입구가 보입니다.
 
눈과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바닥이 좀 딱딱하겠지만 설원에 눕는 것보단 훨씬 호사스럽겠죠.
 
딜런 H. 바넷:....... (동굴에 도착하면 제티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불이나 지핀다....)
(욕하는 거 블러처리해서 썼는데 지워졌네)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어둑하고 서늘합니다.
 
벽에는 꺼진 횃불이 걸려 있고,
 
짐승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높은 곳에 선반이 설치돼 있습니다.
 
모포, 난로와 비상식량 따위를 구할 수 있습니다.
 
딜런은 한쪽에 쌓인 마른 장작더미를 발견합니다.
 
딜런 H. 바넷:(모닥불 만들고 제티 옆에 앉음....)
 
kp:아니
성격이왤케급해
 
딜런 H. 바넷:미안
 
kp:성냥이나 라이터는 찾았나요?
 
딜런 H. 바넷:ㅋㅋ
 
kp:딜런 흡연자임?
 
딜런 H. 바넷:아니..
 
kp:ㅡㅡ
 
딜런 H. 바넷:찾을게요 주섬주섬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딜런은 선반 구석에서 얼마 남지 않은 성냥을 발견합니다.
 
딜런 H. 바넷:(오... 가져가서 장작에 불 붙여 본다....)
 
불을 붙이자 천천히 내부가 밝아옵니다.
 
난로를 켠 덕에 추위도 한결 가십니다.
 
물론 몸이 으슬으슬 떨리긴 하지만…… 배까지 채운다면 더 나아지겠죠.
 
딜런 H. 바넷:먹을 만한 게 있으려나.... (주변 두리번)
 
비상식량을 확인한다면 봉지 라면과 동결 건조 수프, 하이라이스, 육포와 초콜릿 바 조금이 남아있습니다.
 
kp:ㅈㄴ많네
 
낡고 더러운 양은 냄비도 하나 굴러다닙니다.
 
딜런 H. 바넷:(ㅋㅋ 밖에서 눈으로 냄비 벅벅 씻어다가 눈 퍼 와서 물부터 끓인다.)
 
눈을 퍼와 냄비에 넣고, 동결 건조 식품을 끓이면 좁은 동굴 내부에는 음식 냄새가 자욱하게 퍼집니다.
 
맛있다고는 차마 못 해도 맡을 만은 합니다.
 
딜런 H. 바넷:......냄새 맡고 뭐가 튀어나오진 않겠지....
 
제티가 눈을 뜨기 전에 딜런이 한 번 상황을 정리해보는 게 좋겠네요.
 
당신은 분명히 숲에서 크리쳐와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핵을 부숴도 되살아나는 변종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핵의 부품을 흩어 놓기 위해 손에 쥐는 순간……
 
요란한 초침 소리와 함께 암전.
 
그다음은 4년 전의 어느 날.
 
핵을 쥐는 순간 신체 내부에서 격렬한 반응이 일었던 것으로 보아, 크리쳐 간의 무언가가 공명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딜런이 토해낸 시계는…… 크리쳐의 핵이겠죠.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보글보글.
 
타닥타닥.
 
깜빡깜빡.
 
눈보라와 어울리지 않는 조용하고 얌전한 효과음이 동굴 안을 채웁니다.
 
잠깐.
 
무언가 이상한 의태어가 섞이지 않았나요?
 
깜빡깜빡?
 
제티 할로웨이:.... 누구야?
 
눈을 뜬 제티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딜런은 여러 가지 의문 중 하나의 답을 얻습니다.
 
제티는 4년 전의 사람이 분명합니다.
 
전혀 모르는 눈으로, 낯설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딜런 H. 바넷:정신이 들어? 누구긴... 생명의 은인이지.
 
제티 할로웨이:생명의 은인...?
...그게 뭐지? 그럼 생명의 금인도 있게?
 
딜런 H. 바넷:하... 얼어 죽을 뻔한 걸 데려다 살려놨단 뜻이야. 마지막으로 정신이 있었을 때 기억이 나긴 해?
 
제티 할로웨이:음...? 어... 난... Z시 쪽에 파견 됐다가...
어 ? 맞아. 혹시 Z시 시민이세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안전지대로 이동해야 돼요!!
 
딜런 H. 바넷:따지면 맞긴 한데....
아니, 가지 않을 거야. 너도 AOC 같은 건... 그만둬. 어차피 떠날 거면 애초에 고생도 안 하는 게 낫잖아.
 
제티 할로웨이:아니 무슨 소리를... 나 참 ...?! 저는 최강의 인류인데요??
아니 그리고. 실직자가 되란 말을 넘 쉽게하는 거 아니야~???!
 
딜런 H. 바넷:어차피 집에 돈 많잖아. 이런 고생 안 해도 평생 놀고 먹고 할 수 있는데, 왜?
 
제티 할로웨이:....헉. 저 아세요?
혹시 내 팬???
훗. 실물 최강의 인류는 첨보죠??
사인해드릴까요?? (윙크 날려본다..)
앗... 펜이 없네....
혹시 펜 있으세요?
 
딜런 H. 바넷:하여튼 사인 정말 좋아해....... 아니, 필요없어.
너... 최강의 인류고 뭐고 살 빼야겠더라.
 
제티 할로웨이:.......?!
왜요? 사인 팔아도 되는데??
....살은 왜요?
저 무거워요?
그... 뭐냐.. 그 쪽이 약한 거 아니에요?
아니지...
 
제티 할로웨이:제 총이 겁나 무겁거든요? 아맞다 내 총 어딨지??
 
딜런 H. 바넷:사인 같은 거 팔면 벌이가 좀 되나?
(총 어디에 뒀더라) 구석 어딘가에 있을 거야.
 
제티 할로웨이:흠... 여기있네 (총 챙겨들고는) 아무튼 그 쪽이 약해서 그런 거예요. 일반인이잖아요?
운 좋다! 이제 제가 지켜드릴게요. 1:1 경호... 이거 비싼건데...~~
근데 이름이 뭐예요? 몇 살? 아 저 근데 배고픈데 이거 먹어도 돼요? (냄비 가리키고..
 
딜런 H. 바넷:말은 여전히 많고....
먹으라고 해 둔거야. 먹어도 돼.
나이는 왜? 아래면 말 까게?
 
제티 할로웨이:왜요? 까면 안되나? 그 쪽. 저한테 말 막 까잖아요?
나보다 나이 많나보지.? 흠...
 
딜런 H. 바넷:내가 너보다 한 살 많아. 이름은 딜런 힐 바넷이고.
 
제티 할로웨이:음~ 그래요. 딜런 힐 바넷 씨. 제 나이도 아시는 거 보니 엄청나게 팬이신가봐요? (히죽 웃으면서 입에 밥 쑤셔넣어요)
 
딜런 H. 바넷:마음대로 생각해. (귀찮...) ......할로웨이, 혹시 변종 크리처에 대해 아는 게 있어?
 
제티 할로웨이:...변종 크리쳐? 그런게 있나...? 크리쳐는 금속형이랑 ....뭐더라...
아무튼 두 가지 종류인데요?
헉. 이런 거 일반인한테 말해도 되나...?
 
딜런 H. 바넷:괜찮아... 따지자면 일반인은 아니야. 나도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거든.
흠... 아는 게 없나 보네.
 
제티 할로웨이:아 진짜요?! 그래서 나에 대해 잘 아는 건가...
 
딜런 H. 바넷:이것도 처음 보는 거야? (핵을 꺼내 보여준다.)
 
제티 할로웨이:
관찰력
기준치: 25/12/5
굴림: 1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능
기준치: 50/25/10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음.....
..........음...~!!!
봐도 모르겠는데?
제 파트너 알죠??
 
제티 할로웨이:걔는 알지 않을까...
 
딜런 H. 바넷:그래......................................... 그렇구나. (기대도 안 했다.)
파트너?
 
제티 할로웨이:똑똑하니깐... 알지않을까?
근데 밥 안먹어요?
 
딜런 H. 바넷:같이 먹어야 해?
 
제티 할로웨이:..아니 나만 먹나? 배 안고파요?
 
딜런 H. 바넷:고프긴 한데... 알았어. (냠냠)
 
kp:체력 3 회복
 
제티 할로웨이:음... 눈보라도 슬슬 그치는 거 같고...
다 먹으면 갈까?
이제 손발도 움직이는 거 같고...
 
딜런 H. 바넷:할로웨이. 가기 전에... 아까 AOC 그만두라고 했던 말... 이유 없이 한 말 아니야.
진지하게 생각해 봐. 네가 왜 그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제티 할로웨이:...진지하게?
아니 뭐... 능력있는 사람이 (훗.. 조금 잘난 표정을 지어보곤.....)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게...뭐더라..뭐라하더라.. 노비스 오비주? 아무튼. 그거 있잖아?
 
딜런 H. 바넷:성격 하난 참....네가 능력이 있고 남을 도울 수만 있다면 이용당해도 상관없단 의미야?
 
제티 할로웨이:우리 집안에선 안전지대 운영에도 돈을 대주고 있다구요. (훗... 멋있지.? 라는 표정)
이용당한다라.... ? 이용 당하는 건가?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는 건데 뭐...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 딜런 씨~?
 
딜런 H. 바넷:네가 너무 심각하지 않은 거야. (ㅡㅡ)
그래도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더 뭐라고 할 순 없지. 실컷 고생하다 가라.
 
제티 할로웨이:왤케 악담을 퍼붓지?!? 두고 가버린다?!?
 
딜런 H. 바넷: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시는 최강의 인류님께서 일반인을 이런 험한 동굴에 그냥 버리고 간다고?
 
제티 할로웨이:....아 맞아 노블레스 오블리주!!
오.. 똑똑하다...
...농담한거지요... 편안하고 안전하게 안전지대까지 모실게요 딜런 힐 바넷님...!!!!!
 
최강의 인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제티의 회복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꽁꽁 얼어서 괴사를 걱정해야 했던 피부는 금세 핏기가 돌고 뻣뻣하던 손끝은 부드럽게 짐을 움켜쥡니다.
 
허기를 대충 해결하자 제티는 동굴 가에 섭니다.
 
바깥을 살피면 인기척은 들리지 않고, 블리자드는 지나갔지만 바람은 여전히 흉흉해서, 눈이 내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인 수준입니다.
 
제티 할로웨이:흠...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시려면 지금 출발하는 게 딱이겠는데?
너무 늦으면 해가 지니까... 어떻게 생각해요?
 
딜런 H. 바넷:그래.... 얼마나 편하고 안전하게 모시는지 보자고.
 
제티 할로웨이:...하하...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아....
나한테 딱 붙으라구!!
 
상황을 보던 제티가 먼저 앞장섭니다.
 
제티의 입장에서 딜런은 민간인이나 다름없으므로 평소보다 과보호하는 듯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눈보라와 온통 평평한 설원이라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람의 손이 닿을 법한 위치의 나뭇가지 하나만 왼쪽으로 꺾여있습니다.
 
검은 작대기가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제티는 무척 반가운 눈치입니다.
 
제티 할로웨이:동료들이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길표시를 이렇게 하거든.
음..이 쪽 ..? 이 어디더라.. 서쪽인가?
그래 서쪽으로 좀만 더 걸으면 될 거 같은데...
별로 안 멀어서 다행이다~~
 
딜런 H. 바넷:나침반 없어?
 
제티 할로웨이:..없는데...
 
딜런 H. 바넷:......그럼 서쪽인 걸 어떻게 알아.
 
제티 할로웨이:....그냥 말해봤어..
있어보이잖아....
그냥 나뭇가지 꺾인쪽으로 가면 된다구...
하 이래서 똑똑한 애들이랑 다니면 피곤해....
 
딜런 H. 바넷:피곤하면 버리고 가시든가요 최강의 인류님.
 
제티 할로웨이:........아니 안 버린다구요! 최강의 은인님아!!!!
 
딜런 H. 바넷:어어 그래. (꺾인 나뭇가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저벅저벅...)
 
제티 할로웨이:아잇 먼저가지 말라니까!!! 위험하다고오!!!
(쫒아가요)
 
신호를 따라 걷다 보면 높은 절벽이 나옵니다.
 
길이랄 것이 없는 막다른 곳이네요.
 
절벽을 살펴본다면 일정한 간격으로 찍힌, 눈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선발 부대가 어떤 길을 가로질러 갔는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AOC!
 
최강의 인류 집단에겐 막다른 곳조차 또 다른 길이 되는 법입니다.
 
절벽을 오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죠.
 
하지만 문제라면…… 딜런이 연약한 민간인이 되어버렸단 거예요.
 
최강의 인류도, 최강의 크리처도 아닌걸요.
 
제티 할로웨이:은인!! 이리 와~~~!
 
제티는 익숙하게 품에서 벨트를 꺼냅니다.
 
버클을 열고 길게 늘인 후…… 딜런을 묶네요.
 
딜런 H. 바넷:하아..................
 
제티 할로웨이:착하지? 가만히 있어~~??
옳지!!
 
딜런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제티 할로웨이:응, 응, 알아. 미친 거 같아?
그래도 이렇게 해야지 뭐 어쩌겠어.
괜찮아~ 별로 안 위험해. 안 죽게 해줄게. 나만 믿어!
 
딜런 H. 바넷:잠깐 기절해 있으면 되는 거지? (그러고 싶은 심정...)
 
제티 할로웨이:뭐... 그럴 수 있다면..? 그래도 되구~~
 
이 시절의 제티는 최강의 인류지만 최강의 크리처는 아닙니다.
 
...괜찮을까요?
 
벨트를 다 장착하고 나면 제티와 딜런은 무척 가깝게 밀착합니다.
 
제티의 등에 달라붙은 모양새가 새끼 원숭이 같기도 하고 새끼 거북이 같기도 하네요.
 
최강의 인류이자 최강의 크리처였던 딜런에겐 낯선 자세입니다.
 
제티 할로웨이:밥도 안 먹고 사나?
왜 이렇게 가볍지...
 
딜런을 짐짝처럼 매단 제티는 거침없이 절벽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크랙에 손가락을 걸고 훌쩍 뛰어오르는가 하면 책의 펼쳐진 면처럼 매끈한 코너를 온전히 팔 힘으로 딛고 기어오릅니다.
 
뒤에 매달린 딜런은 이리저리 흔들리느라 멀미에 시달릴지도 모르겠어요.
 
점점 지면이 멀어집니다.
 
예전에는 이보다 높은 곳에서도 제티를 믿고 훌쩍 뛰어내릴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딜런 H. 바넷:
기준치: 85/42/17
굴림: 8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칼날 같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찬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드디어 정상입니다.
 
제티 할로웨이:흐..흐아아....
 
평평한 땅에 몸을 올린 제티가 딜런을 풀어주지도 않고 드러눕습니다.
 
딜런 H. 바넷:켁... 야!!
 
샌드위치가 된 채로 호흡을 가다듬으면 자연히 시야에는 하늘이 들어옵니다.
 
제티 할로웨이:헉...헉..... 왜!!!
힘들어 죽겠네...
 
딜런 H. 바넷:이건 풀고 쉬어!
 
제티 할로웨이:어후 진짜~~!! 풀 힘도 없다고~~!!!
 
회색 하늘, 흰색 눈송이.
 
4년 전이고 4년 후이고 조금도 다르지 않은 풍경.
 
그때 보았던 하늘이 정말로 이랬던가.
 
조금쯤 그리운 느낌이 듭니다.
 
그래요, 분명히 그랬던 때가 있었어요.
 
우연히 AOC 요원이던 제티를 구하고, 단둘이 한겨울을 걷던 때가.
 
제티 할로웨이:풀어줄게. 풀어주면 됐지??!
 
처음 만났던 제티는... 이런 식으로 굴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괜찮다고 했죠?”
 
처음 만났던 제티는 이런 얼굴로 웃고 있었죠.
 
당신이 AOC 요원이 되고자, 그 정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계기였습니다.
 
딜런 H. 바넷:최강의 인류한테 깔려 죽게 생겼네~....
 
제티 할로웨이:푼다고오!! (벨트 풀어요)
진짜 자꾸..!!
 
절벽 위도 눈투성이인 건 여전합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이 빠질 정도로 켜켜이 쌓인 눈은 차고 단단합니다.
 
나뭇가지는 여전히 한 방향으로 꺾여있습니다.
 
벨트를 풀고 두 사람이 떨어져서 그 간격을 따라 걸으면,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붑니다.
 
건조한 눈 냄새가 납니다.
 
술렁거리는 공기는 꼭 짐승의 울음소리 같습니다.
 
딜런 H. 바넷: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딜런은 이것이 눈보라의 조짐이라는 걸 알아챕니다.
 
딜런 H. 바넷:할로웨이. 주변에 곧바로 피할 데 없어? 눈보라가 올 거 같은데....
 
휘잉, 거센 눈보라가 밀려오고 시계가 하얗게 물듭니다.
 
제티 할로웨이:...글쎄... 나도 여긴 처음 지나가는 길이라...
 
이리저리 둘러봐도 온통 순백 일색이라 원근감이 사라집니다.
 
흰 세상에 오점처럼 남은 것은 제티와 딜런뿐.
 
주위로 두르고 섰던 나무들이 갑자기 창살처럼 딜런의 주위를 둘러쌌다가, 손을 뻗으면 또 저 멀리 사라져버려 허공만 움켜쥡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한여름의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공간.
 
눈을 깜빡이면 제티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까부터 점차 멀어지더니 완전히 사라진 걸까요?
 
딜런을 놓치고 홀로 나아가거나, 헤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보라를 가르며 나아가고 나아가도 보이는 이가 없습니다.
 
이 설원에 다시금 혼자 버려진 겁니다.
 
Z시의 안전지대까지는 크리쳐가 득시글할 텐데…… 제티 없이, 당신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요?
 
딜런 H. 바넷:하.......................이게 대체 무슨.......
 
딜런 H. 바넷: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kp:이성 감소 없음
 
목소리마저 먹히는 대자연의 백색은 이토록 깨끗하고 순수합니다.
 
제티의 목소리는커녕 바람 소리만 먹먹하게 귀를 메웁니다.
 
완벽히 조난 당했다.
 
딜런이 현실을 직시한 순간,
 
제티 할로웨이:은인, 괜찮아?!
 
언제, 어느 때고 당신의 곁에 섰던 사람.
 
폭주와 죽음 후 깨어날 때마다 자리를 지키던 파트너.
 
당신이 그의 소생을 지켜보듯 그 또한 당신의 소생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몇 번이고 다시 만났던 그 얼굴입니다.
 
비록 4년 전이라 조금 앳되지만요…….
 
딜런 H. 바넷:할로웨이... 어디 갔던 거야?
 
제티 할로웨이:.....그냥 걷고 있었는데?!?
나 이거 알아... 화..화..
화이트...
음... 아 진짜 아는데!!
 
딜런 H. 바넷:화이트아웃?
 
제티 할로웨이:어 맞아 그거~~!!!
화이트아웃!!
그래그래. 아무튼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걸?
 
딜런 H. 바넷:....벨트로 묶고 갈까. (조난당하기 싫음...)
 
제티 할로웨이:나 참... 어린 애도 아니고... 길 잃을까봐 걱정 돼?!?
(딜런 손목 턱 잡아요)
혹시 5살...?
 
딜런 H. 바넷:응. 민간인이라 한 순간에 스러질까 봐 좀 걱정되네.
 
제티 할로웨이:ㅎㅎ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잘 따라 오라구~~
 
제티는 감각에 의존해 근처의 커다란 나무 근처로 이동합니다.
 
새하얀 시야를 앞에 두고 유일하게 새까만 나무.
 
빛이 들지 않아 거무죽죽한 뿌리 근처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영하의 날씨에 새삼스레 체온이 뚝뚝 떨어집니다.
 
가까이 붙어 앉거나 온기를 나누면서 흰 시련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제티 할로웨이:아우 춥다...
 
딜런 H. 바넷:최강의 인류가 추위도 타?
 
제티 할로웨이:그럼 당연히 타지!
내가 크리쳐야?! 추위도 모르게??
 
딜런 H. 바넷:아니... 뭐... 계속 AOC에 있을 거면 잘 기억해 두라고.
 
제티 할로웨이:자꾸 아까부터 뭔말이야...?!
은인 씨 AOC 싫어해..??
 
딜런 H. 바넷:싫지도 좋지도 않아. 애초에 직장에 감정이 어딨어? 그냥 써주니까 있는 거지.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게. 내가 실은 예지 능력이 있거든....
 
제티 할로웨이:은인... AOC 소속이야...?
민간인이라며?!
이름...들어 본 적 없는데...
흠.. 뭐지..? 아니지.. 나는 머리 나쁘니까 모를지도...
 
딜런 H. 바넷:하청업체라 그래. 들어 본 적 없는 게 당연하지....
아무튼, 넌 나중에 동료도 막 패고 그런 무서운 사람이 되니까.... 평범한 인간일 적을 기억해 두란 소리야.
 
제티 할로웨이:...무슨 소리야?
되게... 미래를 아는 것처럼 말하네?
무슨 점성술사야? 나 학교다닐 때 점성술 되게 못했는데...
 
딜런 H. 바넷:무슨 학교에서 점성술을 다 배워. 근데 나도 배웠어. (ㅋㅋ)
 
제티 할로웨이:그치? 요새 필수과목 아닌가..?(ㅋㅋ)
우리 같은 세대 맞네!! 은인 씨는 점성술 잘했나보다....
 
딜런 H. 바넷:난 다 잘했어.
 
제티 할로웨이:....그래 잘났다!!
다 잘했으니까 길 찾는 것도 잘하겠네.
알아서 오쇼!!
(저벅저벅 걸어가요)
 
딜런 H. 바넷:그거랑은 다르지~.... 공부를 잘하는 거랑 크리쳐한테 위협받고 콱 죽어버리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지. (뒤에서 태평하게...)
 
제티 할로웨이:...하... 알았다구 빨리 따라 와...
 
딜런 H. 바넷:(쫄래쫄래)
 
화이트아웃이 끝난 후, 반대편을 내려다보면 저 멀리 도시가 보입니다.
 
딜런이 나고 자란 Z시입니다.
 
크리처에게 쫓겨 이만큼이나 멀리 떨어졌던 거네요.
 
새삼스럽게 그 거리가 실감이 납니다.
 
나뭇가지를 꺾은 흔적은 더 보이지 않습니다.
 
목적지가 이토록 선명하기 때문이겠죠.
 
제티 할로웨이:가자! 1..6?? 아 17!! 17번 게이트 근처에 작전 본부를 꾸리기로 했어.
 
딜런 H. 바넷:그래.... 가자.
 
다행히도 절벽을 다시 내려갈 필요는 없습니다.
 
완만한 비탈길이 나타났거든요.
 
두 사람이 부지런히 걸으면 곧 Z시 외곽에 도착합니다.
 
높이 쌓았던 바리게이트는 무너지고,
 
뼈대를 드러낸 건물의 잔해 사이로는 크리쳐가 돌아다닙니다.
 
제티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일지도 모르겠어요.
 
탄환이 모자랄 수도 있고, 민간인인 딜런을 달고 무리할 수는 없으니 조심해야 할 텐데요.
 
외곽에서 17번 게이트로 향하는 길은 3갈래로 나뉩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길, 학교를 가로지르는 길, 놀이터를 가로지르는 길.
 
제티 할로웨이:은인!
 
딜런 H. 바넷:어.
 
제티 할로웨이:은인은 여기 시민이지?
어느 길이 제일 안전한 지 알아?
 
딜런 H. 바넷:....... 기억 안 나.
 
제티 할로웨이:...말이 돼?! 왜??
 
딜런 H. 바넷:............................몰라
 
제티 할로웨이: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기 살고 있었을 거 아냐?!
 
딜런 H. 바넷:.......................................그렇겠지..........................
아무데나 가. 다 거기서 거기야.
 
제티 할로웨이:그냥 아무거나 추천해 봐...
내가 고르는 것보단 나을 거 같은데?!
 
딜런 H. 바넷:하... 그럼 도로를 가로질러 가자.
 
제티 할로웨이:흐음~ 알겠어! 가자!
 
도로를 가로지르는 길에는 크리쳐가 없습니다.
 
훤히 드러난 곳이라 엄폐물이 없어, 조우했다간 크게 곤란했을 텐데…… 다행이네요.
 
아니, 여기 없는 크리쳐들은 이미 Z시에 바글거릴 테니 다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요.
 
딜런 H. 바넷:
기준치: 85/42/17
굴림: 7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딜런은 크리쳐 대신 제법 쓸만한 자동차를 발견합니다.
 
운전할 줄 안다면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겠네요.
 
딜런 H. 바넷:(할줄안다고하자)
 
제티 할로웨이:(할줄알아?)
 
딜런 H. 바넷:(할줄알거같은데?)
 
제티 할로웨이:(난할줄몰라)
 
딜런 H. 바넷:내가 운전할게. 타.(ㅋㅋ)
 
제티 할로웨이:오.... 면허..있나보네?(ㅋㅋ)
 
딜런 H. 바넷:있지 그럼....
 
제티 할로웨이:아싸 그럼 사양 안하고!!
(냅다 조수석에 타요)
뭐해? 안타고?
 
딜런 H. 바넷:(타이어 멀쩡한가 보고 차에 타서 시동 켠다...)
 
제티 할로웨이:나 조수석 처음 타 봐!!
 
딜런 H. 바넷:......그럼?
 
제티 할로웨이:이 차는 되게 작네...
음? 그냥 뒤에 탔지
 
딜런 H. 바넷:아가씨군....
 
제티 할로웨이:아가씨까지는....
그냥 어릴 때부터 그렇게 타서...
은인은???
민간인들은 자동차 많이 타나?
이렇게 작으니까... 1인 1대?
 
딜런 H. 바넷:자동차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보통은 한 가정에 한 대지.
 
제티 할로웨이:으흠..~ 은인도 자동차 있어?
 
딜런 H. 바넷:자차는 없어. 살 여유가 됐을 때는... 차가 필요가 없었거든.
 
제티 할로웨이:왜 필요가 없는데? 설마 뛰어다니는 게 더 빨라서~? ㅋㅋ 막 이래~~
 
딜런 H. 바넷:차보단 날아다니는 게 더 빠르긴 하지?
 
제티 할로웨이:엥~ 말도 안돼!! 무슨 빗자루 타는 소리를 하고 있어~~
 
딜런 H. 바넷:
자동차 운전 Roll
기준치: 60/30/12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제티 할로웨이:아 뭐야...?!
 
딜런 H. 바넷:
건강
기준치: 65/32/13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제티 할로웨이:
건강
기준치: 99/49/19
굴림: 4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와장창!
 
갑자기 튀어나온 크리처에 놀라 딜런은 그만 전봇대에 차를 박아버리고 맙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제티 할로웨이:갑자기 뭐야~~... !! (차에서 내려요)
...잘 가라...
잘 좀 보고 운전하지?!
 
총성이 터지는 동안 얼마나 천지가 시끄럽고 사위가 흔들리는지,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입니다.
 
이때의 몸이란 이토록 약했던가요…….
 
딜런 H. 바넷:갑자기 튀어나온 걸 어떡해? ...오랜만이라 그래. (터덜터덜)
 
제티 할로웨이:그래.. 뭐 그렇다 쳐줄게...
여기부턴 걸어가자. 혹시 또 크리쳐가 나올 지도 모르니까...
 
딜런 H. 바넷:그래...... 얼마나 더 가야해?
 
제티 할로웨이:금방 도착 할 거 같은데...
그래도 여긴 금속형 크리쳐 밖에 없었나 봐.
...다행인가?
요즘 들어 갑자기 새로운 형태의 크리쳐가 등장하기 시작했거든...
뭐...더라....
생...
 
제티 할로웨이:...생.?
...뭔지 알아..?(반짝반짝한 눈으로 쳐다봐요)
 
딜런 H. 바넷:생체형.
 
제티 할로웨이:어 그래 생체형!! ...
똑똑하네... AOC 요원인줄..
아무튼 생체형 크리쳐는 아직 정보도 충분하지 않고...
핵의 위치도 잘 파악이 안되거든...
만나면 좀 곤란한데..
 
제티는 Z시의 AOC 요원이 사망한 것도 예상치 못한 생체형 크리쳐의 개체 수 증가 때문이라고 씁쓸하게 설명합니다.
 
그의 동료도 몇이나 사망했다는 모양이군요.
 
제티의 얼굴에는 죽음을 슬피 여기거나, 두려워 여기는 감정이 드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도 그럴게, 몇 번이고 죽어도 되살아나는 최강의 크리쳐가 아니니까요.
 
이때의 제티에게 죽음이란 절대적인 끝이었을 겁니다.
 
제티 할로웨이:생체형 크리쳐의 발생 원인으론 진화? 설이 제일 유력해.
금속형이었던 것들이 인간을 먹거나, 관찰하면서 형태를 바꾼다는 거지....
끔찍하다...
 
그렇게 말하는 제티에게, 진실을 알고 있는 딜런은 뭐라고 대답할까요?
 
어쨌건, 두 사람은 도로를 빠져나와 AOC 작전 본부에 도착합니다.
 
.
 
.
 
.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 멀리 AOC 작전 본부가 보입니다.
 
몇 개의 텐트와 바쁘게 오가며 무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모두 AOC 앰블럼을 달고 있습니다.
 
제티는 그들을 발견하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제티 할로웨이:다 왔어! 이제 안전해.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인류의 영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의 인류.
 
이 정의에 오점은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제티의 눈동자는 의심 한 점 없이 반짝거리겠죠.
 
“제티!”
 
“살아있었구나!”
 
“그럴 줄 알았어! 거봐, 내가 제티샤라면 살아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거리가 이렇게 먼데도 용케 알아본 사람들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옵니다.
 
딜런이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섞여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티의 생환을 두고 내기를 했는지 동전을 던지고 받기도 합니다.
 
제티를 둘러싸고 웃고 환영하고 안도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딜런은 오롯한 외부인입니다.
 
한참 복귀를 반기던 사람들이 진정하면, 그제야 누군가 말합니다.
 
“생존자가 남아있었어?”
 
제티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면 최강의 인류라는 녀석이 민간인에게 역으로 구조 당하다니, AOC의 수치라는 놀림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
 
“Z시의 생존자는 이미 진작 차량에 탑승, X시로 이송했어.”
 
“지금 남은 인원은 전투에 투입될 소수 정예랑 정찰 담당뿐이라……”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곤란한 얼굴로 턱을 굅니다.
 
딜런을 배제하고 몇 마디를 나누던 사람들은 곧 대화를 마치고 흩어집니다.
 
제티는 본부를 경비하기 위해 소수 인원이 남아있을 테니, 이곳에서 기다리라며 가까운 텐트에 데려다줍니다.
 
제티 할로웨이:착하지 은인?! 여기서 기다리면 X시에 데려다 줄게.
아맞다, 이걸 안 물어봤네. 가족은??
가족이 어디있는지 알아봐줄까?
 
딜런 H. 바넷:가족... 없어. 괜찮아.
 
제티 할로웨이:앗..... ....... .................... ..........
내가 괜히....
 
딜런 H. 바넷:아니, 죽었단 의미는 아니고.... 그렇게 각별하지 않아서.
잘 살아 있겠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제티 할로웨이:아...!! ..하...?
...그렇게 생각하면 가족이 슬퍼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딜런 H. 바넷:애초에 내 부모님이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슬퍼하려나?
 
제티 할로웨이:당연히 슬퍼하지...!!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 ...죽어도 어쩔 수 없다니...
아무튼 여기 있어.... 나는 전투하러 가봐야하니까....
 
딜런 H. 바넷:...그랬으면 좋겠네.
다치지 말고.
 
제티 할로웨이:응. 감기 걸리지 말구...
 
텐트는 두꺼운 천막을 사용했는지 바깥의 횡횡한 겨울바람도 제법 훌륭하게 차단합니다.
 
내부에는 의자와 침낭, 몇 가지 식량과 조리 도구 등이 있습니다.
 
가운데 놓인 이동식 난로에서는 훈훈한 김이 피어올라 퍽 따뜻합니다.
 
위에 올라간 주전자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끓어오릅니다.
 
제티 할로웨이:(딜런한테 담요 덮어줘요)
 
딜런 H. 바넷:.....너나 잘 해.... (담요 꼭...)
 
제티 할로웨이:(끓고 있는 주전자 빤히 쳐다보다가...) 하.. 이거 아껴놨던 건데...
(품 속에서 제티 꺼내서 건네요)
...타 먹어.. 핫초코...
 
딜런 H. 바넷:......그래.... 네 몫까지 타 둘 테니까 핫초코가 식기 전에 돌아오고....
 
제티 할로웨이:응 !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나는 프로거든!!!
 
딜런 H. 바넷:그래. 알았으니까 빨리 가. (코코아 타 마시려고 컵 찾아요...)
 
제티 할로웨이:알았다구... 왜 쫒겨나는 기분이지...?... ...
 
저 밖에서 제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
 
.
 
.
 
탄창을 채우고, 무기와 군복의 상태를 점검한 AOC 요원들이 하나, 둘 헬기에 탑승합니다.
 
투두두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가 돌아갑니다.
 
귀를 때리는 굉음이지만 익숙해서 안정감이 들 지경이네요.
 
마지막으로 헬기에 타던 제티는 당신에게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웃는 얼굴입니다.
 
눈보라가 약해져서 천만다행이에요.
 
지구의 유일한 희망을 태운 헬기는 금세 하늘 위로 비상해선 저 멀리 온점보다 작은 구멍이 됩니다.
 
/desc 헬기가 큰바람을 몰고 사라지면, AOC 작전 본부에는 딜런을 비롯해 3명 남짓의 정찰 담당만 남았습니다.
 
임시로 세운 본부는 여러 개의 텐트가 듬성듬성 배치된 형태입니다.
 
가장 안쪽의 텐트는 리더의 것인지 AOC의 마크가 커다랗게 찍혀 있습니다.
 
끄트머리에 헬기와 자동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고요.
 
정찰 담당은 최전선에서 배제된 정찰 담당 요원들입니다.
 
대부분 신입으로 딜런을 크게 경계하지 않습니다.
 
그야, 민간인인 걸요?
 
딜런이 지나치게 당황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작전 본부를 돌아다니거나, 대화를 거는 것 정도는 묵인합니다.
 
kp:조사 가능 > 정찰 담당 가장 안쪽의 텐트 헬기와 자동차
 
딜런 H. 바넷:흠.... (코코아 한 잔 타 두고 가장 안쪽 텐트를 살펴본다.)
 
AOC 마크가 크게 새겨진 텐트입니다.
 
앞에선 정찰 담당 한 명이 지키고 있습니다.
 
리더의 공간이자 회의실로 사용되는 곳이기 때문에 외부인인 딜런에겐 접근을 불허합니다.
 
딜런 H. 바넷:
은밀행동
기준치: 50/25/10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딜런은 몰래 텐트의 뒤쪽 틈새로 파고듭니다.
 
비록 민간인의 몸이 되었지만 이런 잠입은 식은 죽 먹기죠.
 
안에 들어가면 별다른 건 없습니다.
 
딜런이 맡겨진 텐트의 내부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회의 시에 사용한 건지 화이트보드에는 지도와 몇 장의 보고서, 휘갈긴 메모가 남아있습니다.
 
딜런 H. 바넷:(지도를 펼쳐본다.)
 
Z시의 지도입니다.
 
외곽에 AOC 작전 본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광장, 병원, 백화점에 각각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1차 전투 예상 지역일까요?
 
딜런 H. 바넷:.............................
(보고서를 살펴본다...)
 
생체형 크리쳐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4년 전 정보이니 딜런이 아는 것보다 낙후되었습니다.
 
생체형 크리쳐의 발생 원인이 인간의 시체를 섭취한 거로 예상된다거나, A시 근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거나……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믿던 때가 있었죠.
 
이젠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요.
 
딜런 H. 바넷: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별다른 정보는 더 없어 보입니다.
 
딜런 H. 바넷:(메모를 본다.)
 
몇 개의 단어가 보이지만, 필기체고 원체 휘갈긴 탓에 제대로 읽기 어렵습니다.
 
딜런 H. 바넷:
언어(모국어)
기준치: 50/25/10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제티의 대체 인력, B, J, K…….
 
아무래도 제티의 실종으로 인한 부재를 채우기 위한 후보들의 이름이었던 모양입니다.
 
딜런 H. 바넷:인력 교체가 빠르네.... 재수없군. (화이트보드도 볼 게 있나?)
 
더 볼 것은 없어보입니다
 
딜런 H. 바넷:(나가서 헬기를 살핀다.)
 
헬기와 차량은 딜런에게도 익숙한 모델입니다.
 
헬기와 자동차 운전쯤이야 AOC 훈련 튜토리얼 항목인 걸요.
 
진작 때웠죠.
 
그리운 기분이 드네요.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5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헬기와 자동차는 모두 시동이 걸린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유사시에 언제든 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AOC 작전 본부를 얼추 돌아봤을 때,
 
지직, 직.
 
지지지…… 지직…….
 
지나가는 요원의 주머니에서부터 거친 기계음이 흘러나옵니다.
 
무전기의 신호입니다.
 
사람이 없는 텐트 사이로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크리쳐 발생 사…으로부터 403……니다. 안심…시오, 국민…….」
 
그런 알량한 정부의 방송이 아니라,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5월이라니, 봄 같은 건 기억나지 않아요.
 
메이데이, 그런 구조신호가 존재한단 사실조차, 어쩌면 발음조차 생소합니다.
 
그야 당연하죠.
 
당신과 제티는 언제나 인류 최강이었는 걸요.
 
바짝 마른 코끝에서 혈향이 느껴지고, 그곳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본능이 치밉니다.
 
안온한 본부 한복판에 안주했다간 제티가 다양한 사인 중 하나로 죽어버리고 말 테니 욕구대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딜런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상하다.
 
제티는 분명히 살아 돌아올 텐데.
 
4년 후를 살다 온 딜런이 그 증거일 텐데도.
 
사방에 눈이 쌓여 질리도록 하얗습니다.
 
이곳은 도시 외곽, 아득하게 휘몰아치는 흰 눈보라 너머로 저 멀리 도시의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땅거미가 잠식한 풍경은 어쩐지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여…기는 광장, 광……이다. 생체…… α가 출몰,」
 
「지원 요…… 아악!」
 
비명과 함께 무전이 끊깁니다.
 
고요하던 AOC 작전 본부는 금세 들썩거립니다.
 
문득 딜런은, 자신의 숨이 굉장히 거칠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한가요?
 
그러니까, 여긴 너무 춥고, 배가 고프고, 그래서,
 
이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아,
 
맞습니다…….
 
“할로웨이에게 가야 해.” 라고,
 
어떤 사명감을 느꼈는지도(어쩌면 말해버렸을지도!) 몰라요.
 
딜런 H. 바넷:(헬기... 헬기에 몰래 탈 수 있나?)
 
딜런 H. 바넷:
은밀행동
기준치: 50/25/10
굴림: 63
판정결과: 실패
 
kp:어이어이
 
딜런 H. 바넷:할로웨이에게 가야 해.........
 
딜런 H. 바넷:
기준치: 85/42/17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갑작스런 구조요청에 본부가 혼란한 틈을 타 딜런은 운좋게 헬기를 훔쳐 탑니다.
 
AOC 요원들은 고함을 질렀겠네요.
 
이미 질리게 운전해본 것들이기 때문에 판정은 생략합니다.
 
단 한 사람을 태운 헬기는 상공으로 날아오릅니다.
 
목표 지점은 Z시의 광장.
 
창 아래로 펼쳐진 설원은 눈이 시리도록 희디흽니다.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닙니다.
 
할로웨이의 안위가 이토록 불안하긴 처음입니다.
 
딜런이 떠난 지 오래된 동네지만 지도의 구조는 이미 머릿속에 저장됐습니다.
 
능숙하게 광장으로 핸들을 당깁니다.
 
광장 근처 건물,
 
백화점의 옥상에는 헬기 주차장이 있습니다.
 
거대한 프로펠러가 멈추는 진동이 온몸을 울립니다.
 
헬기의 문이 열리고, 따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식는 것 같습니다.
 
저 아래 점처럼 보이는 사람 중……
 
딜런 H. 바넷: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제티를 단박에 찾아냅니다.
 
똑같은 AOC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주위에 무수히 쓰러진 가운데,
 
제티는 몇 명과 함께 제법 잘 싸우고 있습니다.
 
맞은편에 선 생체형 크리쳐는 이리저리 형체를 바꾸며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합니다.
 
제티의 생존을 확인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달리고,
 
달리고,
 
달립니다.
 
옥상을 벗어나 8F 가전제품, 7F 인테리어, 6F 스포츠웨어, 5F 유아동 의류, 4F 남성 의류, 3F 여성 의류, 2F 패션 잡화, 1F 화장품과 향수 코너까지.
 
엘리베이터조차 작동하지 않아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옵니다.
 
쿵!!!
 
딜런이 착지한 대리석 바닥에 길게 기스가 나고, 끼이익,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신발 자국이 남습니다.
 
엉망진창으로 구르다시피 착지한 딜런이 백화점의 문을 열면, 바로 앞의 광장이 펼쳐집니다.
 
불길한 피 냄새와 지독한 악취가 피어오르는 전투의 현장.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건……
 
「그륵, 그르륵…….」
 
‘그어그어’하고 우는, 클리셰 SF 세계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쳐의 눈동자.
 
짐승처럼 가느다란 동공은 어느 생명체를 합성한 흔적일까요?
 
그 교활하고 자아를 잃은 결과물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어집니다.
 
문득 머릿속에 어떤 문장이 스칩니다.
 
〈생존자의 진술을 대조해본 결과, Z시에 출현한 생체형 크리쳐 α는 한 번 본 상대의 외형을 복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측. 각별히 주의 요망.〉
 
눈을 깜빡이면,
 
딜런 H. 바넷:할로웨이! 살려줘!
 
또 다른 딜런이 그곳에 있습니다.
 
탄환의 장전을 위해 잠시 시선을 뗐던 제티가 고개를 들면 무척 놀란 얼굴입니다.
 
AOC의 규칙, 첫 번째.
 
크리쳐를 보는 순간 망설이지 말고 쏴 갈길 것.
 
그러나 자신을 구한, 자신이 구한 딜런입니다.
 
제티는 한순간 머뭇거렸고……
 
퍽!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딜런의 형태를 가지고 있던 크리쳐의 얼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길쭉한 팔을 휘두릅니다.
 
그 타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맞은 제티의 배가 꿰뚫립니다.
 
아니, 배가 맞나?
 
어쩐지 조금 더,
 
위인 것 같은…….
 
광장은 또 한 번 피바다를 이룹니다.
 
크리쳐가 쓰레기를 버리듯 제티를 내팽개치면, 텅 빈 동공을 가진 몸이 광장의 경계에 버려집니다.
 
상처 부위에선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피가 샘솟습니다.
 
고작 몇 발자국만 다가가면 제티에게 닿을 거리입니다.
 
최강의 인류라기엔 형편없는 꼴.
 
딜런 H. 바넷: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 그래요.
 
제티는 낙오되어 설원을 헤매다 뒤늦게 작전 본부에 도착했죠.
 
회의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상급 크리쳐의 특수 능력을 몰랐을 겁니다.
 
그러나 생각은 언제나 한 박자 늦습니다.
 
당신이 제티에게 다가가면, 최강의 인류지만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이가 색색, 밭은 숨을 몰아쉽니다.
 
가물거리는 시선, 붉게 물든 방탄조끼, 멈추지 않는 피는 바닥마저 같은 색으로 적십니다.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그는 최강의 크리쳐가 아니에요.
 
이대로 죽으면 되살아나지 못할 겁니다.
 
전투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제티 할로웨이:은...은인...
 
제티는 흐물흐물 반쯤 녹은 입으로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우물거립니다.
 
제티의 죽음을 목전에 둔 딜런,
 
딜런 H. 바넷: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kp:이성 3 차감
 
무사한 딜런을 다시 목격한 제티가 뭐라고 말할까요?
 
여전히 크리쳐로 의심해서 어떻게든 핵을 부수려 할까요?
 
죽음의 트리거가 된 딜런을 원망할까요?
 
제티 할로웨이:무...사...하네....
그럼 됐......
 
딜런이 얼떨떨하게 서 있는 사이, 그는 천천히 팔을 뻗어 딜런의 손, 혹은 발목을 붙잡습니다.
 
공교롭게도 제티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더는 말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너덜너덜한 머리는 축 늘어지며 당신의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엎어집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최강의 인류!
 
제티의 핵이 박살 난 순간!
 
긴 이명이 들리고,
 
째깍,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째깍,
 
“도망가.”
 
째깍,
 
눈앞이 핑 돌며…… 딸깍.
 
불 끈 거 누구야?!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딜런은 눈을 뜹니다.
 
믿기지 않게도 울음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건 눈물이 아니라…… 시계입니다.
 
금속 재질로 은색을 띠고 있으며 내부에 든 것은 새파랗게 빛나는 점액질과 복잡다단한 태엽들.
 
크리쳐의 핵.
 
딜런이 이야기의 시작에서 파괴했던 바로 그것.
 
살아남은 제티는,
 
어째서 C.V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체가 됐을까요?
 
우연이라고 생각했나요?
 
클리셰 SF 세계관에 단순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티가 C.V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체여야 했던 이유,
 
딜런이 제티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이날의 딜런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티가 크리쳐의 핵을 주입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알파(α)라는 것을.
 
딜런의 손에는 크리쳐의 핵이 놓여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산산이 조각 난 크리쳐의 살점과 부품을 몽땅 끌어모을 정도로 강력한 재생력을 지닌 핵!
 
사지가 멀쩡한 제티의 신체를 수복하고 되살리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겁니다.
 
자,
 
봐요.
 
당신의 발치에 엎드러진 목숨을.
 
죽어가고 있으나 아직 삶을 연명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빈 구멍은 딱 적당한 자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핵을 꽂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제티는 살아날 겁니다.
 
죽지 않는 신체를 얻어,
 
저편의 괴물을 물리치고 동료들을 구해내겠죠.
 
모두 입 모아 그를 칭송하길,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인류의 영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의 인류.
 
이 정의에 오점은 없습니다.
 
제티의 소생은 C.V 실험의 완성을 이루는 열쇠가 되는 장면.
 
그야말로 클라이막스입니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당신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창조할, 유일한 연출가예요.
 
주연은 오직 제티 할로웨이와 딜런 힐 바넷,
 
두 사람입니다.
 
자,
 
어서 선택을!

 

더보기

 

딜런 H. 바넷:자유롭게 사는 것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 (제티에게 크리쳐의 핵을 이식한다.)
 
텅 빈 자리에 핵을 쑤셔 넣으면,
 
심장의 잔해를 가르고 이 세계를 점령한 괴물의 중심이 뿌리를 내립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익숙한 시계의 바늘 소리가 들립니다.
 
째깍,
 
째깍,
 
깜빡.
 
카운트다운처럼 순식간에 영점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은, 잠깐.
 
무언가 이상한 의태어가 섞이지 않았나요?
 
깜빡?
 
제티 할로웨이:... 딜런?
 
딜런 H. 바넷:...정신이 들어?
 
제티 할로웨이:...아니, 은인인가? (베시시 웃어요)
 
눈을 뜬 제티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딜런은 하나의 확신을 얻습니다.
 
제티는…… 아니, 우리의 존재는.
 
인류의 멸망을 저지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 장치의 신)라고.
 
기계로 구성된 심장이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하면, 제티는 급속도로 회복합니다.
 
터졌던 내장이 복구되고, 찢어졌던 근육이 달라붙고, 구멍이 난 피부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핵은 흔적조차 사라져, 온전히 그의 심장이 되고 눈에 보이는 증거라곤 무엇 하나 남지 않았는데도……
 
카운트다운은 왜 끊이지 않죠?
 
긴 이명이 들리고,
 
5,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4,
 
제티 할로웨이:...핫초코는 맛있었어?
 
3,
 
마지막 목소리가 멀어지고,
 
2,
 
눈앞이 핑 돌며……
 
1.
 
"딜런!”
 
정신을 차리면 다시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으로 돌아옵니다.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딜런은 새하얗게 얼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제티가 놀란 얼굴로 당신을 살핍니다.
 
끝이라기엔 허무하게도,
 
주위에는 49개의 부품이 흩어져 있습니다.
 
무엇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새로운 크리쳐의 핵이니까요.
 
제티 할로웨이:딜런...!!
괜찮아?...
선배가 직접 만지자마자 폭발했어...
 
딜런 H. 바넷:어... 어어. 괜찮아. 아마도....
 
제티 할로웨이:딜런도 폭발에 휘말리더니..... 한동안 소생이 늦어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제티의 속눈섭 끝에는 눈송이가 매달렸습니다.
 
걱정일지도 모릅니다.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인류의 영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의 인류.
 
당신이 살리고,
 
당신이 만들어 낸.
 
종내에는 당신을 구한…….
 
당신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간신히 돌아온 원래의 궤도에서,
 
당신은 어떤 대사를 뱉나요?
 
딜런 H. 바넷:...핫초코나 먹으러 가자.
 
어떤 말을 하건 목소리가 눈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는지,
 
아니면 목이 메었던 건지 제티는 눈가를 찌푸리고 되묻습니다.
 
제티 할로웨이:뭐라고~~~????????????
 
딜런 H. 바넷:하....
 
다시 대답하건, 하지 않건 엔딩은 다가옵니다.
 
검은 가지에서 흰 눈이 우르르 떨어집니다.
 
커튼보다 두껍고,
 
오래도록 거둬지지 않을 종류의 막이 내립니다.
 
가까운 곳에서 오래된 라디오의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크리쳐 발생 사…으로부터 1016……니다. 안심…시오, 국민…….”
 
「대피, 대피하십시오. 전지대의 최전방이 무너졌습니다. 로운 크리쳐의 등장입니다. 방공호로 대피하십시오!」
 
안전지대의 최전방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당신은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곳에 누워있을 시간이 없으니까요.
 
새로운 크리쳐를 물리치기 위해선 핵을 파괴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됩니다.
 
그 핵이 가속할 수 있도록 같은 알파의 접촉이 필요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니,
 
AOC에 희생당한 실험체들만이 할 수 있는……
 
물론, 당신의 파트너는 함께할 겁니다.
 
딜런의 등 뒤를 지키고,
 
때아닌 자장가를 부르면서까지도 말이죠.
 
크리쳐는 진화하고,
 
외계의 위험은 끊임없습니다.
 
인류는 결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용하고,
 
해치고,
 
분열하죠.
 
상황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괜찮습니다.
 
함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어요.
 
우리는 존재 자체로 세계를 위한 최강의 클리셰니까.
 
세계는 아마, 우리를 이렇게 부를 거예요.
 
END 2. 최강의 클리셰,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제티 생환 / 딜런 생환

 

 

더보기

.
 
.
 
.
 
사선에 기운 얼굴은 잠자코 눈을 감고 있습니다.
 
딜런이 오래도록 보아온 그 얼굴입니다.
 
그러나 압니다.
 
근 1년간의 일과는 달리…… 이대로 둔다면 제티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이때까지의 그는 아직 ‘인류’였으니까요…….
 
피에 젖은 뺨은 붉고 축축하며 비린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모든 걸 알면서,
 
내막을 알면서도 제티에게 또다시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어요.
 
딜런은 때론 어떤 죽음이 삶보다 명예롭다는 진리를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러지 않았습니다.
 
정의가 될 수 없는 오점을 도저히 찍을 수 없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치열한 접점 속에서도 두 사람의 시간은 무척 천천히 흐릅니다.
 
찰나 같은 억겁,
 
억겁 같은 찰나가 지난 끝에…… 결국,
 
제티의 숨이 멎습니다.
 
최강의 인류였던 어떤 영웅은,
 
최강의 크리쳐가 되지 못하고,
 
피로 물든 전장에서 완벽한 마지막을 맞습니다.
 
누구나 예상한,
 
그러나 모두가 슬피 울 죽음입니다.
 
클리셰라는 건 사랑받는 법이잖아요…….
 
콰직,
 
무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납니다.
 
아니,
 
크리쳐가 날뛰며 광장의 이곳저곳을 부수는 소리입니다.
 
이미 AOC 요원들은 죽여도 죽여도 재생하는 알파,
 
핵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생체형 크리쳐에게 학살당하기 직전입니다.
 
살아남은 이의 수가 이미 죽은 이보다 적고,
 
그나마도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 뿐입니다.
 
생체형 크리쳐가 딜런을 발견하고 다가옵니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일렁이던 외피는,
 
채 열 발자국을 못 남긴 시점에선 제티의 시체를 뒤집어쓴 것처럼 그리운 얼굴입니다.
 
크리쳐와 전투가 시작됩니다.
 
알파를 재우는 자장가.
 
주문을 외우는 당신조차 알지 못하는 음율, 가사, 그리고 소리.
 
오직 괴물을 위한 자장가를 부르노라면 고요한 목소리는 죽음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광장에 멀리멀리 퍼져 나갑니다.
 
오직 괴물을 위한 자장가를 부르노라면 고요한 목소리는 죽음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광장에 멀리멀리 퍼져 나갑니다.
 
아이들이란 자장가를 따라 눈을 감는 법.
 
머나먼 곳에서도 어머니의 부름에 돌아보는 것.
 
쿵.
 
자장가를 들은 생체형 크리쳐는 잠자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중력을 거스르고 부유하던, 외계와 이 별의 끔찍한 혼합물은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산성액이 검은 땅 위에 그어진 흰 선을 뭉개고 지우며 흘러나옵니다.
 
딜런이 한발 물러선다면, 툭.
 
발치에 익숙한 것이 걸립니다.
 
대 크리쳐용 살상 무기입니다.
 
……이젠 제티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4년 전의 이들은 크리쳐의 약점을 모르는 모양이지만…… 수도 없이 상대해 온 딜런, 당신이라면 어디를 노려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인의 외형을 복제하는 타입이라면 눈이 핵이잖아요.
 
물론,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파괴된 신체도 금세 복구하는 상급 크리쳐의 머리통을 박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잠들어 있지 않다면 말이에요.
 
과녁을 겨냥합니다.
 
그리고 총구를 당깁니다.
 
쾅!
 
익숙한 파열음과 함께, 크리쳐는 영원한 잠에 빠져듭니다.
 
너덜너덜한 머리는 축 늘어지며 광장의 블록을 더럽힙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도 제티는 여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 반동이 너무 거셌던지 방아쇠에 걸었던 손가락이며 개머리판을 기댔던 어깨가 미친 듯이 욱신거리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부러진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이 마지막 감각이었습니다.
 
.
 
.
 
.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딜런은 눈밭에서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흰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빛의 입자들.
 
심장은 여전히 정신없이 쿵쾅쿵쾅 날뛰고.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봐도, 옴짝달싹하지 않습니다.
 
그제야 딜런은 깨닫습니다.
 
……여기, 설원이 아닙니다.
 
“심…은 어떻지?” “C.V ……ml 투…했습…다.
 
이… 없음.” “투여량 ……까요?” “……마다 … 상태 확…해.”
 
오한이 듭니다.
 
눈보다 더 차갑고 소름 돋는 액체가 주사기의 바늘에서 쏟아져 혈관으로 스밉니다.
 
들리는 목소리는 드문드문 끊기지만, 이해할 수 있어요.
 
자신이 새로이 ‘최강의 크리쳐’라고 불릴 사람이라는 것을요.
 
당신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민간인인 당신이 어떻게 생체형 크리쳐 α를 파괴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죠.
 
AOC 정예 요원, 최강의 인류가 절반 이상 살해된 가운데 태연하게 살아남은 단 하나의 기적.
 
AOC 상부에서 당신을 첫 실험체로 고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인물이었으니까요.
 
당신은 C.V의 첫 실험체입니다.
 
이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제티와 처음 만난 설원, 그 정의의 구성성분이 되고 싶던 어린 날의 바람, AOC 입단 후 제티가 크리쳐였단 거짓된 사실을 접하고 받았던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로서 지켜본 소생과 죽음, 그리고 함께 걷던 나날.
 
딜런은 전부 기억합니다.
 
당신의 손을 내려다보세요.
 
당신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심박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투여 중단해!"
 
"진정제 준비됐나?!” “예, 대기 중입니다!”
 
.
 
.
 
.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당신은 핏덩어리를 토해냅니다.
 
그와 동시에 딜런은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어깨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본다면,
 
여기저기 끈적하게 말라붙은 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은 핏물에 젖어 축축합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군복이 지독하게 무겁습니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총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입니다.
 
그보다,
 
딜런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차가운 웅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래된 라디오의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크리쳐 발생 사…으로부터 866……니다. 안심…시오, 국민…….”
 
고소한 향기가 코를 자극합니다.
 
10m쯤 떨어진 곳에서, 불 앞에 앉은 낯선 사람이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먹고 있습니다.
 
라디오 소리는 저곳에서 들리는 것 같네요.
 
등을 돌린 사람은 당신이 바로 뒤에 왔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레토르트 식품의 푹 익은 건더기를 일회용 포크로 휘저을 뿐, 라디오 소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여전히 최강의 인류를 운운하는 걸 보니, 분명 시답지 않은 가십 뉴스겠지만요.
 
문득 딜런은, 자신의 숨이 굉장히 거칠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 사람에게 왔나요?
 
그러니까, 여긴 너무 춥고, 배가 고프고, 그래서, 식량과 온기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아, 맞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죽여버리고 싶어.”라고, 생각해버렸는지도(어쩌면 말해버리기까지 했는지도!) 몰라요.
 
부추기듯 두드리는 심장 고동 소리를, 당신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낯선 사람에게 달려듭니다.
 
아니, 달려들었을 겁니다.
 
분명 달려들지 않았나요?
 
작동 방식도 알지 못하는 총은 내던지고, 무기가 될 만한 무언가를 잡는다거나, 없다면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세운다거나…….
 
대충, 그랬던 것 같은데…….
 
“―――!”
 
굉음이 울리고, 허수아비가 쓰러지는 것처럼 무기력한 퍽! 소리와 함께 딜런의 세상이 한 번 크게 뒤집히더니, 어느덧 낯선 사람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부는 바람과 내리는 눈, 그것들로만 이루어진 전부 잿빛인 세계에서… 홀로 살아서.
 
문득, 딜런은 가슴이 허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이를테면……
 
END 3. 클리셰 파괴를 위한 클리셰, 딜런
 
제티 생환 / 딜런 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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